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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다이어리제주]21살 뚜벅이의 제주도보름살기(수지篇①)

[제주왓뉴스 = 여수진 기자, 한수지 시민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한창 기승을 부리던 3월, 가족들의 우려를 뒤로 한 채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학교 3학년. 앞으로 다가올 취업이라는 무게가 나를 짖누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코로나19로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그렇게 애써서라도 나는 제주의 하늘과 바다를 보고 싶었다. 매일 저녁 과자 한봉지 들고 보던 석양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제주에서 만난 인연을 통해 조금은 느리게를, 그리고 나눔을 배우게 됐다. 이번 나의 제주 여행은 그 어떤 수업보다도 값졌다. 제주도에서의 시간들을 정리해 본다.

 

제주 1일차 (#화순금모래해변)

 

코로나 때문에 시간과 계절감을 잊었는데 여기 와보니 완연한 봄이다. 공항에서 서귀포의 숙소까지 이동하는 도로 내내 초록색과 노란색의 향연이다. 나는 평소에 과장, 호들갑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어디 여행지를 가도 '다를 게 뭐 있어? 사람 사는 데가 다 똑같지'라던 사람인데 사진으로만 봤던 유채꽃이 여름철 철쭉보다도 흔히 길가에 피어있는 광경을 보고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제주가 맞았다. 까만 현무암과 노란 유채꽃 뒤로 펼쳐진 저 언덕은 한라산. 말 그대로 ‘제주’가 나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제주와 인사를 나누고 숙소에 짐을 풀고, 동네 구경을 하고 숙소 앞 금모래해변으로 산책을 나섰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모래가 금색이어서 금모래해변인가 하였더니, 모래는 검은 모양이었고 해에 비친 바다 빛이 금색이었다. 항구를 옆에 끼고 바다가 작게 물결쳤다. 큰 파도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모래알갱이들과 햇빛알갱이들을 함께 금색으로 물들여 인사시킬 수 있다는 듯 여유롭고 잔잔하게. 너무 가까워 산이 아니라 어젯밤 아이들이 만들어 놓은 바위 무덤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산방산 너머로 해가 모습을 감춘다. 순식간에 하늘의 밑동은 붉게 물들고, 그 위를 지나던 구름도 그에 맞춰 옷을 갈아입는다. 3월 중순, 아직은 추운 밤바람을 이겨보겠다는 듯 붉게 타오르던 노을에, 이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게 된 건 나였다.

 

 

제주 2일차 (#화순금모래해변 #산방산 #탄산온천 #일품순두부)

 

아침이다. 그리고 봄이다. 동네를 산책하고, 바다를 산책하고. 바다가 동네라는 사실이 아직 믿기지 않는다. 강마저도 멀고 먼 서울과 다르게 파란 바다가 집 욕조마냥 가깝게 자리하고 있다. 제주는 제주이구나. 섬은 섬이구나. 금모래해수욕장 '썩은 다리'가 언덕인 줄 모르고 올레 10코스를 걸으려다가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돼서 다음을 기약했다. 다시 내려와 바다 산책.

 

 

늦은 점심을 먹고 친구를 만나 202번 버스를 타고 산방산 탄산 온천으로 향했다. "온천이 얼마나 오랜만이야", "탕에는 핸드폰 못 갖고 들어 갈텐데 심심해서 어째"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표를 끊었다. 원래 입장료는 성인 12000원이지만 인터넷에서 미리 구매하면 8000원대에 구매 가능하다. 노천탕 이용료 3000원과 노천탕에서 입어야 할 수영복 대여료 2000원을 추가 결제하고 입성. 노천탕은 온도별로 탕이 다섯 개 정도 있다. 물에 들어가 있다가 뜨거워서 몸을 꺼내면 춥고, 다시 넣으면 덥고 하는 노천탕의 매력을 만끽하다가, 이대로는 아쉽다 하고 얼음 띄운 식혜를 사 먹는다.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현대 사회에서 3000원으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효용이다. 실내 탕도 깔끔하다. 식혜만 아니었어도 노천탕을 따로 결제할 의미가 없었을 정도로 넓고 쾌적하다. 몸을 씻고 나오니 깜깜한 저녁, 탄산 온천 정류장에서 202번 버스를 타고 다시 숙소 근처로 갔다. 202번 버스는 제주도의 근두운이다. 어디든 가는데 심지어 자주 온다(제주도 기준). 제주를 뚜벅이로 다녀왔다는 사람 입에서 이 버스가 안 나오면 그 사람은 높은 확률로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뚜벅이가 거짓말까지 하며 자랑할 거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미스테리하게도 은근 서울에 없고 제주에만 있는 체인점이 있다. 지금 소개하려는 건 제주의 일품 순두부. 제주에는 지점이 꽤 많은데 육지에는 거제를 제외하고는 없다. 제주까지 와서 무슨 순두부찌개야!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생각하는 나름이다. 갈치, 흑돼지만 제주에 있는 게 아니라 순두부찌개도 제주에만 있을 수 있다. 합리화가 아니다. 여행은 더욱이나 생각하기 나름이다. 밑반찬 종류가 엄청 많다. 메뉴도 아주 다양하다. 순두부찌개에 넣을 수 있는 모든 재료를 찾아낸 느낌이다. 순두부 메뉴는 모두 8000원이다. 밥으로는 돌솥밥이 나온다. 한정식이다. 나는 하얀 맛 조개 순두부, 친구는 매운맛 소 곱창 순두부를 먹었다. 맛있다. 맛이 없을 리가 없다.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순두부 뚝배기를 깨끗이 비우면 잘 끓은 돌솥밥 누룽지가 기다리고 있다. 디저트 삼아 후루룩 후루룩 먹다 보면 그 날의 피로가 모두 풀린다. 여행에서의 모든 식사에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잘만 먹으면 그만 아닌가.

 

 

편의점에서 밤사이 먹을 과자를 사서, 하늘의 별을 보며 언덕길을 내려오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별일 없지만, 그래서 더 행복한 제주의 긴 밤.

 

제주 3일차 (#산방산 #유채꽃밭 #원앤온리 #황우치해안 #식과함께)

 

날이 밝았다. 밝진 않았고, 조금 흐렸다. 옷을 차려입고 산방산으로 향했다. 산방산 하면 유채꽃, 20대 여성들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악한 그 유채꽃밭을 향해 길을 나섰다. 지도에 ‘산방산 유채꽃밭’을 검색해서 버스를 타고 내리니 기나긴 차도였다. 차가 쌩쌩 달리는 길의 가장자리로 조심조심, 하지만 '사람이 먼저다'라는 생각을 하며 걷다 보면 입장료를 천 원씩 받는 유채꽃밭들이 등장한다. 몇 개 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길을 내놓았다. 그 길을 내놓은 방식이 조금은 터프하다. 그냥 밀었다. 나있는 그 긴 유채꽃 줄기들을 벤 것도 아니고 그냥 바닥으로 밀어버렸다. 사진 스팟을 찾아 정글의 법칙을 찍다 보면 유채꽃밭 한가운데 도착해있다. 그럴 일 없겠지만 백설 공주가 된 듯한 착각이 든다. 떨어진 꽃을 귀에 꽂아 셀카도 오천 장 정도 찍어주고, 바위 위에 앉아 유채꽃밭에서 태어난 유채꽃 요정(...)처럼 사진도 찍어주다 보면 이제 그만 나가고 싶어진다.

 

유채꽃밭에서의 팁을 공개하자면, 첫째, 사람이 많으면 뒤에 많이 걸린다. 포토샵으로 지울 솜씨가 있다면 참 좋겠지만 보통은 그렇지 않으므로, 구도를 잘 잡아야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둘째, 옷은 화이트, 데님, 레드 계열이 잘 받는다. 쨍한 색일수록 색감이 잘 살 듯하다. 나는 검은 자켓을 입고 갔다. 뒤에 건물과 함께 나오니 땅 보러 온 사람 같았다. 셋째, 위에서 말했듯이 길을 내기 위해 유채꽃들이 고속도로처럼 밀려있는데, 그 부분이 사진에 나오면 상당히 웃기다. 사진 구도를 잡을 때 최대한 밀린 바닥 부분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벌이 많다. 너무 많아서 귓가가 웅웅댈 정도는 아니지만, 벌레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힘들 정도이다. 절대 쏘지 않으니 자신감을 가지고 전진하실 것. 마지막으로, 유채꽃밭이 보통 돌로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 나와서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도 나름 잘 나온다. 멀기 때문에 사람들도 많이 안 나오고, 깔린 유채꽃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생각보다 괜찮은 사진을 건질 수 있다. 다만 ‘입장료 천원을 내고 들어가세요.’ 팻말이 걸리지 않도록 주의할 것.

 

 

다음으로 향한 곳은 카페 원앤온리. 황우치 해안이 앞에 펼쳐져 있고, 뒤에는 산방산이 있다. 이보다 배산임수일 수가! 제주도에 청와대를 세운다면 이 자리에 세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만큼 뷰가 아름답다. 카페 규모가 크다. 브런치 메뉴도 팔고, 칵테일, 맥주도 팔고, 음료 메뉴도 많고 시그니처 디저트도 있다. 인테리어는 원목과 시멘트가 주이다. 1층 실내 자리와 2층 야외 테라스, 그리고 1층 야외 마당, 이렇게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내가 갔던 날은 바람이 꽤 불어서 야외에는 못 앉았다. 날이 따뜻해지면 밖에서 바라보는 해안의 모습이 정말 절경일 것 같다. 청귤 에이드와 초코 라떼, 산방산 케이크를 주문하고 안쪽 소파 자리에 앉아 제주의 혹독한 바람을 맞아 지친 몸을 쉬게 했다. 황우치 해안은 황우지 해안과는 다른 곳이다. 여행을 준비하며 둘을 헷갈려 했는데, 원앤온리 앞의 바다가 황우치 해안이고, 외돌개 쪽의 바다가 황우지 해안이다. 황우치 해안은 제주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물 색이 드라마틱하게 맑지도 않고 그렇게 특별할 건 없어 보이지만, 돌산인 산방산과 만나 묘한 디스토피아적 이미지를 만들며 다른 행성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아이돌 뮤비 촬영장에 와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름의 멋이 분명히 존재한다. 올레 10코스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하나로마트에서 흑돼지 목살 두 덩이를 사다 간단히 구워 먹고, 본격적으로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화순에 위치한 ‘식과 함께’, 9900원에 갈치 정식을 즐길 수 있다. 제주도에 왔으니 갈치는 한 번 먹어야지, 하는 계획은 만만치 않은 가격 때문에 좌절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합리적인 가격에 갈치요리를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있다. 갈치 정식 외에도 전복소라게우밥, 보말칼국수 등 여러 메뉴가 있다. 식사메뉴는 모두 9900원. 우리는 갈치 정식과 보말칼국수를 하나씩 주문했다. 밑반찬 종류가 아주 많다. 제주도의 특징인가보다. 남도 음식이 이만큼 남쪽까지 해당하는 거였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이다. 갈치 정식에는 밑반찬과 더불어 갈치구이 두 덩이와 고등어조림 한 조각, 그리고 성게 미역국이 나온다. 고기가 아주 크고 두껍고 실한 것은 아니지만, 가격에 비하면 정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한 상이다. 칼국수 국물도 진하고 맛있다. 보말은 우럭의 제주 방언이다. 푸짐하게 들어간 보말 국물에 밥만 말아 먹어도 든든할 것 같다. 후에 식당을 다시 찾아 전복소라게우밥도 먹어 봤는데, 비린 맛도 전혀 없고 고소하고 짭짤한 풍미가 아주 좋았다. 밑반찬은 정식과 동일하게 나온다. 가게 명함을 통해 마라도, 가파도 가는 배편, 조각 공원 입장권을 할인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사장님이 정말 친절하시다. 마감 시간에 간 우리를 숙소까지 태워다주신 덕에 정말 어두운 제주의 밤길이 무섭지 않았다. 유달리 베풂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제주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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